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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 고깔을 쓴다 (3)

한관식 - (社)한국문인협회 영천지부장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16.06.27 16: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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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전히 통통 튀어 오를 것 같은 해는 서산에 걸렸습니다. 인간의 욕망도 저렇게 일몰이 가져다주는 의미로 깨닫게 됩니다. 무엇을 향해 달려왔던가? 파도는 파도로 흔들리며 나비효과를 가져오는 것처럼 보였습니다. 관광객들은 감탄사를 연발합니다. 그만큼 고스란히 몰입할 수 있게 노을 안에 저마다 익사합니다. 아무도 시선을 거두지 않습니다. 지평선 아득한 곳에 하루해는 지고 거대한 바다는 꿈틀대고, 아무런 영향도 끼치지 못할 것 같았던 백사장과 갯벌이 자신의 관점에서 포효합니다. 입과 귀가 열리고 눈은 내내 깜빡일 수 없습니다. 순간적으로 풍경을 놓칠 것 같아 정확한 자세로 주시합니다. 반드시 이 자리를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바깥과 안의 경계선이 또렷해집니다. 사실이 밝혀집니다. 이유도 분명해집니다. 가고자 했던 이정표도 보입니다. 나는 바닷가 언저리에서 맴돌지만 유체 이탈한 또 다른 내가, 가운데를 내달립니다. 첨벙첨벙 바다 트랙에 단거리 플레이어처럼 거칠게 달립니다. 힘차게 구겨진 허벅지를 필두로 가슴과 엉덩이는 스프링처럼 튀어 오릅니다. 내가 뿜어내는 열기를 서산의 모니터에는 어떻게 비춰지고 있습니까? 시간을 배경으로 영상은 젖은 물기를 털어내는 상처 입은 철새인가요? 단지 일상에 녹아 있다는 이유만으로 등 돌린 아낙네의 무심함 같은 걸까요? 딩동 메시지가 도착했습니다. 우리는 정상입니다. 더 이상 오를 곳이 없습니다. 일몰이 보내준 메시지였습니다. 순간, 이를 악물고 버텼던 <깡>이 바닥으로 추락하는 광경 앞에 다다랐습니다. 삶도 어느 순간 멈춰지겠지요. 땅거미가 지자 바닷물에서 푸른빛이 감돕니다. 플랑크톤의 수많은 입자들이 뒤서거니 앞서거니 하며 몰려왔다 몰려갑니다. 공연은 끝났습니다. 커튼콜을 외치듯 관광객들은 여전히 감동 속에서 셔터를 누릅니다. 다시 해는 떠오르지 않고 내일을 기약합니다. 밤바다는 등대를 떠올립니다. 신중하면서도 도전적인 불빛이 사방으로 퍼져나갑니다. 고즈넉한 시간이 층층이 쌓여집니다. 자우룩한 파도소리가 나의 겨드랑이를 간지럽힙니다. 지나간 세월은 순간이지만 꽤나 많은 추억을 담고 있습니다. 만약 돌아갈 시간이 주어진대도 자신이 없습니다. 치열하지도 못했고 방관자도 아닌 참으로 밋밋한 삶의 주인이었습니다. 그런 삶이 어쨌든 힘이 들었습니다.
거기 있나요? 당신.
뜨거웠던 당신과의 인연이 소름처럼 돋아납니다. 지금 생각해보면 필요 없는 논쟁으로 소모한 에너지가 후회됩니다. 누구보다 당신은 현명했고 이해심이 많았고 사려 깊었던, 그 모습을 헤아리지 못하고 격한 주장만한 내가 원망스럽습니다. 그러나 어떤 울림은 있습니다. 직접적 혹은 간접적으로 자극을 받으면서 우리의 관계를 지키고 싶어 하는 당신의 의연함이 내내 밟힙니다. 이혼이라는 극한 처방이 없었다면 부딪히는 횟수는 잦아질 것이고 서로에 대한 상처로 만신창이가 되어 있었을 겁니다. 내 것과 당신 것을 서로 나누어 가지고 돌아섰을 때 국내여행가를 떠올렸지요. 그런 직업이 있는지 조차 모르지만 민들레 홀씨처럼 떠돌다보면, 자기 분석적 스펙이 쌓여 필요로 하는 곳에 다시 뿌리를 내리고 싶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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