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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재소설]고깔을 쓴다 (1)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16.06.24 10: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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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기 있나요? 당신.

 

 
↑↑ 한 관 식 (사)한국문인협회 영천지부 지부장
 

한 시간 전에 안면도에 도착한 지금 바다 앞입니다. 먼 바다가 실어 나르는 보급품을 몸으로 받아내는 백사장은 보란 듯이 펼쳐져 있습니다. 포장지가 뜯긴 보급품의 알맹이는 파도였습니다. 헉헉 숨을 몰아쉬며 돌아볼 여유도 없이 치고받는 거친 삶 한쪽이 드러납니다. 파도는 바다의 나이테를 만들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해는 에드발룬처럼 하늘에서 빛나고 나의 포커스는 엔진을 켠 배를 쫓습니다. 저만치에서 엔진소리가 요란합니다. 바다를 두려워하거나 혹은 낡은 목선의 앓는 소리일겁니다. 배 기둥엔 그물이 주렁주렁 매달렸습니다. 곧이어 펼쳐질 격렬한 신호탄처럼 보였습니다. 어느 지점에서 저 그물이 드리우면 촉각과 시각과 청각은 발 빠르게 바빠지겠지요.

망망대해에서 깊숙이 매듭을 비끄러맨 목선은 먼저 기다림을 배웠습니다. 뱃사람의 팔뚝은 폭력적인 근육으로 만들어져 언제든 싸울 준비가 되어있었습니다. 하루 종일 기다려 본 사람의 눈매는 움푹합니다. 낙타의 눈썹은 여과기 역할을 한다지요. 먼지랑 모래랑 바람이랑 걸러내면서 눈이 밝아진다지요. 육지로 올라온 뱃사람의 눈을 본적이 있나요. 눈 밑 주름살이 어디로 뻗어 어디로 다다랐는지 보게 되면 숙연해집니다. 주름살이 향하는 방향은 두고 온 바다입니다. 끝은 삶과 죽음의 다다름입니다. 어느새 목선은 겨자씨만큼 작아졌습니다.

유월의 햇살은 불편한 관계 안에 들어 있지 않아 좋습니다. 차양遮陽도 없이 백사장을 걷습니다. 문득 올려다 본 하늘에는 어린양구름이 나를 따라옵니다. 양몰이 목동처럼 휘파람을 붑니다. 안면도의 바다는 눈부시게 나를 사로잡습니다. 소나무 숲의 군락이 있는가 하면 형형색색의 바위들로 진을 친 곳도 있습니다. 관광객 한 무리가 유흥을 즐깁니다. 육지와 연결된 안면도는 해풍 앞에서 당당합니다. 사람들로 북적인 곳을 피하다보면 외눈박이 거인 같은 태안곶을 만나게 됩니다. 파도와 암초가 어우러져 장관을 이루는 곳입니다. 자칭 꾼이라면 밑밥을 던져 낚시에 열중하고 싶은 몫 좋은 자리도 보입니다.

해가 반대편으로 넘어가는 오후엔 낚시꾼들로 붐비겠지요. 나는 그때쯤 안면도가 자랑하는 갯벌을 찾을 생각입니다. 그 생각이 꼬리를 물자 벌써부터 후끈 달아오릅니다. 신발바닥에 전해지는 차지면서도 스펀지 같은 탄성(彈性)의 내구성, 그리고 무릎과 무릎사이에서 방황하는 개불, 참게, 조개, 망둥어와 소라. 한동안 아웃사이더로 배회한 내가 복귀할 수 있는 시작이라면 이 시간이 한가롭게 느껴지지 않습니다. 사실 처음부터 안면도가 목표는 아니었습니다.

무작정 서해안 고속도로에 차를 얹었습니다. 백 킬로 이상을 달리는 차들과 어깨겨루기에 밀려나 빠진 곳이 안면도로 갈수 있는 인터체인지였습니다. 잠시 생각했습니다. 그러면 안면도도 갈수 있겠다. 그곳에 가면 딱히 무엇을 한다는 확신은 없었지만 팽팽한 전율이 느껴졌습니다. 가리라. 소금기를 잔뜩 머금은 안면도에 가리라. 마치 오래전 버킷리스트 목록을 찾아 온 것처럼.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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