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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담나누미칼럼]내가 읽은 그림책 ‘나는 기다립니다’

그리움은 기다림의 통로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16.02.25 1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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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 명 희 사)녹색문화컨텐츠개발연구원 부설 미래교육연구소 소장
 

우리의 삶이란, 생각이 싹틀 때부터 죽을 때까지 기다림의 연속이라는 것을 보여주는 그림책이 있다. 세르쥬 블로크가 쓰고 그린 “나는 기다립니다”이다.

이 그림책의 표지에서부터 마지막 뒷장까지 기다림들은 빨간 털실로 엮여져 있다. 이 책이 나에게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이유는 무엇일까? 가슴 밑바닥에 깔린 내밀한 그리움과 기다림을 빨간 털실로 불러일으켰기 때문이다. 마치 ‘갱빈’이란 단어가 향수를 불러일으킨 것처럼 말이다.

첫 페이지를 넘기면 창밖의 비가 그치기를 기다리는 소년의 모습이 빨간스웨터로 나타난다. 그 다음 장은 잠들기 전 부모님이 뽀뽀해 주기를 기다리는 소년의 입술이 빨간 털실이다. 다음은 기차역에서 연인을 기다리는 소년의 목에 빨간 털실로 짠 목도리가 둘러져 있다. 사랑하는 이와 결혼할 때는 가슴에 빨간 털실의 하트가 자리 잡고 있다. 아이를 가졌을 때도 뱃속에 빨간 털실의 씨앗이 자리하고 있다.

부부싸움 뒤에도 뒤엉킨 빨간 털실들이 어지럽게 널려 있다. 그러나 아내가 죽었을 때 남편과 아내의 빨간 털실은 끊겨져 있다. 그 털실이 영구차의 뒷부분을 동그랗게 장식하고 있다. 새봄이 오기를 기다리는 남편의 세워진 코트 깃에 빨간 털실로 짠 목도리가 함께 한다.

이렇게 빨간 털실로 엮여진 기다림은 내가 겪은, 그리고 겪어야 할 기다림들이다. 이 기다림들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누어 볼 수 있다. 한 가지는 빨간 끈으로 이어진 기쁨이다. 또 소통하고 싶어 하는 당신을 위해 헝클어진 빨간 털실로도 나타난다. 빨간 끈이 떨어진 곳에서는 다른 세상까지 함께 하고 싶은 애절한 정표로 나타난다.

이 세 가지로 나눈 기다림은 기쁨일 수도 있고 바람일 수도 있고, 슬픔일 수도 있다.
얼마 전 모 부대에서 군인장병들에게 이 그림책을 읽어 준 적이 있다. 여기 저기 훌쩍거리는 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 이 그림책의 내용들을 현재 겪어보지 못했다할지라도 공감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우리 삶의 행로가 그와 같기 때문일 것이다.

기다림은 과거, 현재, 미래와 연결되어 있다. 기다린다는 것은 미래지향적인 단어인데 과거의 형태로도 읽혀진다면 이치적으로 맞지 않을 것이라고 반문하는 이도 있을 것이다. 그렇지만 기다림은 과거의 경험으로부터 오는 경우가 종종 있다.

비 오는 날 툇마루에 앉아 추녀 끝에 떨어지는 빗물을 바라보다 회상에 젖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그때 그리움을 만났을 것이다. 이 그리움은 돌아가지 못해서 더 안타까운 기다림이라고 말할 수 있다. 과거에 대한 그리움이 일으켜 만든 애틋함은 미래의 그리움을 만날 통로가 된다. 그러므로 그리움은 기다림의 통로라고 할 수 있다. 우리는 이 통로를 통해 기다림을 만나는 것이다.

기다림의 통로에는 빨간 털실이 있다. 빨간 털실은 기다림을 엮을 것이다. 합격을 기다리는 초조한 전화기에. 눈이 그리운 겨울의 마음에. 얼어붙은 땅을 뚫고 올라가려는 씨앗에. 낙엽을 떠나보내는 나무의 마음에. 새로운 세상을 꿈꾸는 개혁의 마음에. 어머니의 손맛이 담긴 된장찌개를 한 번만 먹어봤으면 하는 백발노인의 안타까운 마음에. 그 사람이 더 이상 고통 받지 않고 하늘나라로 갔으면 하는 슬픈 사랑의 마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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