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단영역

본문영역

[담나누미칼럼]해체 직전의 상엿집이 일으킨 기적

  • 채널경북 webmaster@channelkb.co.kr
  • 입력 2015.11.12 14:52
  • 글씨크기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경일대 교수 박규홍
 

해체 직전의 상엿집 하나가 기적을 불러일으켰다. 그 상엿집이 스스로 조화를 부린 것인지 아니면 거기에 보관되던 상여로 이승을 떠나 저승에 잘 도착하신 선조들이 음덕양보(陰德陽報)의 힘을 보여주신 것인지, 상엿집은 해체 일보직전에 영천에서 경산으로 옮겨져 구사일생의 위기를 넘겼다.

영천시 화북면 자천리에서 마을의 흉물로 지목되어 곧 사라질 위기를 맞았던 이 상엿집은 2009년 경산 무학산으로 자리를 옮겨 본래의 모습을 되찾자 차츰 그 진가를 드러냈다.

이듬해 거기에서 나온 문서와 더불어 상엿집으로는 유일하게 국가지정문화재로 이름을 올리고, 그 해 6월에는 인근의 경일대에서 ‘경산 상엿집 국가문화재지정 의의와 문화관광자원화’란 주제로 학술대회가 열리는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급기야 작년과 올해에는 영남대와 대구가톨릭대의 협력으로 두 차례의 국제학술대회가 열려 국내외 전문가들의 주목을 받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유산으로 굳건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상엿집이 불러일으키는 기적은 이제 시작에 불과한 것으로 보인다.

이 상엿집이 또다른 우리 것과 우리 것에 주목하는 사람들이 모이도록 손짓하고 있기 때문이다.
2013년에 만주 장흥향 주민들이 사용하던 상여가 그곳에서 고별제를 거친 뒤 무학산의 곳집으로 들어왔다. 2014년에는 꼭두박물관의 김옥랑 관장이 양해각서로 상호협력을 약속했다.

뿐만 아니라 빼어난 우리의 춤과 가락이 상엿집을 중심으로 베풀어지고 있다. 상엿집이 아니었더라면 기대하기 어려운 낭보의 연속이다.

일이 이렇게 진행된 데는 무학산에 상엿집을 품을 수 있는 넉넉한 나라사랑 정신이 있었기 때문이다.
곧 없어질 처지의 상엿집을 통째로 무학산으로 옮긴 나라얼연구소 조원경 이사장과 2007년부터 매월 무학산에서 인문학 강의 프로그램을 가동한 황영례 소장의 신념과 끈기가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임은 이론의 여지가 없다.

이같은 노력이 지속된다면 10년 후, 20년 후 무학산 상엿집을 둘러싼 정경은 더 큰 기적의 확연한 증거가 될 것이다.

지금까지 진행된 변화만으로도 앞으로 거둘 성과에 대한 기대를 크게 갖지 않을 수가 없다.
더욱이 지난 10월 30일과 31일 양일에 걸친 국제학술대회는 우리의 바람이 허망한 꿈에 그치지 않을 것이라는 믿음을 주기에 충분했다.

첫째 날의 발표에서 각국의 상·장례 문화가 매우 현실적인 삶의 한 부분임을 중국과 일본 학자들을 통해서도 확인할 수 있었다.

죽음을 철학의 중심으로 끌어들인 하이데거에 대한 양명수 교수의 논의는 갈 길 바쁜 현대인들에게 던지는 ‘삶의 진정한 의미’에 대한 통렬한 질문이었다.

둘째 날, 상엿집 앞에서 펼쳐진 상여 행렬과 우리의 춤은 더욱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전날 ‘우리 것의 소중함을 밝히는 이 행사의 중요성을 알고 있느냐’는 김광언 명예교수의 일갈대성이 태평무를 추는 이애주 명예교수의 손끝에서 커다란 깨우침으로 완성되었다.
이애주 교수는 망자의 앞길을 가로막는 악귀를 물리치는 벽사의 휘쟁이춤을 대중 앞에서는 처음 선보인다고 했다.

이 교수가 그 시·공간에 부여한 의미의 무게는 설화리 상여와 박수관 명창의 소리에 어울어진 춤사위에 고스란히 묻어났다.

우리 것에 대한 자부심을 더하게 한 상엿집의 기적이었다.

흉물스럽다고 없애려고 했던 우리 것에 따뜻한 눈길과 손길을 보내자 무가(無價)의 보배가 되어버렸다.

상엿집이 우리에게 선사한 또 하나의 값진 교훈이다.
 

저작권자 © 채널경북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개의 댓글

0 / 400
댓글 정렬
BEST댓글
BEST 댓글 답글과 추천수를 합산하여 자동으로 노출됩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수정
댓글 수정은 작성 후 1분내에만 가능합니다.
/ 400

내 댓글 모음

하단영역